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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야기

한신·아와지대지진(阪神·淡路大地震), 또는 고베 대지진

by Nautilus 202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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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 헤이세이 7년 (1995년) 효고현 남부 지진(兵庫県南部地震), 한신·아와지대지진(阪神·淡路大地震), 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고베 대지진으로 알려져 있음

발생시기 : 1995년 1월 17일 화요일 5시 46분

발생장소 : 효고현 아와지 섬 북쪽

재난종류 : 지진(모멘트 규모 6.9)

피해규모 : 사망자 6,434명, 실종자 3명, 부상 43,792명, 주택전파 104,906채 등 재산피해 10조엔

피해범위 : 고베시, 오사카시, 니시노미야시, 아시야시, 다카라즈카시 등

 

옛날 VHS화면이라 화질이 좀 구립니다. 양해를...

 

 

고베시 고가도로 기둥 파괴 모습
고가도로와 기둥 탈락

1. 재난의 개요

지진 발생 초기에는 미진이 있긴 했으나 이정도의 대지진이 올 것이라는 예측은 하지 못했으므로 피해가 더 컸다. 지진의 예측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에는 국민들에게 가해지는 공포와 불안의 영향이 너무 크게 전달 되므로 큰 지진이 올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하더라도 대피 권고는 쉽게 내릴 수 없는 것이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긴 하다. 어쨌든, 이 지진이 유난히 피해가 컸던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지표면으로부터 진원지가 겨우 15KM 아래에서 발생하여 지진 가속도가 발생, 격렬한 지각운동이 발생했다. 고베시는 그 탄생이 갯벌매립도시로서 약한 지진에 의한 진동에도 매립토 하부의 갯벌이 액상화되어 그대로 주저 않을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일본은 전통 일본식 가옥에 주거를 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일본의 전통가옥은 지붕이 무거운 기와로 되어 있는 반면 기둥과 벽은 하중에 비해 가는 기둥과 석고나 대나무로 만들어진 벽체로 되어 있어 지진에 약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지진에 의한 진동으로 쉽게 무너져버리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고베의 사망자의 90%, 오사카의 사망자 40%는 이러한 이유로 아까운 목숨을 잃게 되었다. 

 

건물간 구름다리 붕괴

2. 지진의 경과

 - 최초 지진 : 1995년 1월 16일 월요일 18시 26분,  리히터 규모 3.6 발생

 - 두번째 지진 : 1995년 1월 16일 월요일 18시 49분 아카시 해협(본토와 아와지 섬 사이) 리히터 규모 2.5 발생

 - 세번째 지진 : 1995년 1월 16일 월요일 18시 55분 리히터 규모 1.5 발생

 - 네번째 지진 : 1995년 1월 16일 23시 49분 아사키 해협에서 5시간 동안 4번의 지진 발생

 - 마지막 지진(본파) : 1995년 1월 17일 5시 46분, 리히터 규모 7.2 발생

  이처럼 수회의 전진 지진이 발생했지만 그렇다할 만한 대비가 없는 상태에서 본파를 당하여 피해가 매우 컸다.

 

건물 중앙부 붕괴로 주저앉은 모습
당시 지진으로 이렇게 중앙부 층이 내려앉은 경우가 많았다

3. 피해상황

한신지역(阪神地域)이라고 불리는 니시노미야시(西宮市), 아시야시(芦屋市), 다카라즈카시(宝塚市) 등 효고현 남동부의 인구 밀집 지역과 아와지섬의 일부에서 최대 진도 7을 기록했고, 오사카에서 계측진도 6.4 (진도 6강)를 기록하였다. 인구 약 150만 명의 고베시에서 피해가 특히 컸다. 일본에서는 1923년 간토 대지진 발생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6,434명이 사망, 3명 실종, 43,792명이 부상당했으며, 주택 전파 104,906채 등 재산피해도 10조엔(당시 일본 GDP의 2.5%에 해당)에 달했다. 한신 고속도로 일부와 산요 신칸센, 특히 신오사카역~히메지역 구간이 무너져 WIN350(500계의 시제차) 시험이 하카타역~히메지역 구간만 이루어지고 붕괴된 구간은 임시 JR버스로 대체, 흙을 덮어 우회선로를 만드는 등 피해가 심각하였다. 이처럼 많은 교통 수단이 무너지면서 교통이 마비되었다. 무엇보다 이 지진으로 고베의 생명줄인 항만이 파괴되어 그 복구에만 2년이 걸리고 400억달러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지진의 진동은 오사카, 요코하마, 도쿄에서도 관측되었고, 오사카에서는 놀란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지진에 취약한 여러 일본식 집들이 붕괴되었으며 마이니치 방송 자야마치 사옥이 심하게 흔들리는 등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인한 한국 교포의 인명 피해도 5백여 명에 달했다. (위키백과 참조)

 1) 건축물

  - 전파 : 100,301채

  - 반파 : 108,786채

  - 일부파손 : 230,318채

  - 화재건수 : 294건

 2) 기반시설

  - 도로 : 10,069개소 파손, 고속도로(고가) 635M 도괴 등

  - 철도 : 신간선 고가 붕괴 9개소 등 사설철도, 다수의 지하철 역사 붕괴 및 교각 440개 파손

  - 항만 : 고베항 부두붕괴로 사용불능

  - 기타 토사 붕괴 : 7개소

 3) 도시 시설

  - 가스 : 86만호 공급중단

  - 수도 : 약 130만호 단수

  - 전기 : 약 260만호 정전

  - 전화 : 30만호 회선불능

 

지반 액상화 현상으로 도로 하부 지반이 내려 앉은 모습

 

4. 피해의 복구

지진이 발생하자 전국 각지에서 이재미 지원의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한 인원은 하루평균 2만명 이상, 3개월간 집계로 117만명이 넘었다. 이 지진을 기점으로 일본 내 재해 현장에 대한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중요성 및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 현지 지원이 아닌 지원물자, 헌혈, 모금 등에 참가한 수를 합하면 그 인원은 더욱 많을 것이다.

고베, 오사카쪽 목조가옥이 많아 화재로 인한 피해가 컸다
폐허가 된 시가지
고가고속도로 500미터 구간이 무너진 모습
지진으로 인한 열차 탈선 및 전복
희생자들을 기리는 일본인들
곳곳에 화재로 인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넘어진 한신 고가도로

5. 지진 재해 대응수습상의 문제점

언제나 그렇듯이, 정부는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해 상황에서 매끄럽게 잘 진두지휘해나가는 정부가 얼마나 있을까. 고베 지진에서의 정부도 늑장 대응은 고질이었다. 상황파악부터 제대로 되지 않아 구조가 지체되고 일본의 고질인 관료주의로 인해 더더욱 그 대응은 부실했다. 특히, 지진 초반에 수회에 걸쳐 전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처가 매끄럽지 못하고 사태를 오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지진 후 수습에 있어서도 10만명이 넘는 이재민을 수용할 시설 부족으로 애를 먹었었다. 

재난, 특히 지진이 빈번한 일본이 이정도의 대처밖에 못했다는 것을 보고 과연 우리나라는 이정도 규모의 대형 지진으로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을때 어떻게 대처해나갈지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라고 느껴진다.

 

 

 

 

** 자료출처 : 위키백과, 네이버지식인, 중앙119 사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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